영화 공작 실화
0. 개요
공작을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영화였습니다. 다 보고나니 궁금점이 들더군요. 어디까지가 각색이고 실화일까요? 궁금증을 못 참고 과거 실화에 대해서 짤막하게 조사해봤습니다.
영화와 실화를 비교도 해보고, 실제 인물들은 누구인지, 이루어낸 일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잘 보시구 영화 실화 내용에 대한 궁금증 해소하세요.
그럼시작!
WARNING
스압
(하지만 읽으면 재밌는 스압)
영화 공작 실화
1. 영화 각색과 실화 내용 비교
먼저 영화 속 자잘한 스토리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실화에 비교해보자 합니다.
1. 박채서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
당시 흑금성은 특수 훈련과 운동으로 단련된 몸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전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특수 공작 임무에 지장을 받을까 염려해서이고(실제로 진짜 자기관리가 철저했다고합니다), 다른 하나는 특수 공작이라는 긴장된 삶 때문에 위장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2. 극중 흑금성이 북한에서 빠져나가는 장면은 각색입니다.
극중 후반부, 흑금성이 평양에 들어간 직후 간첩 언론보도가 나왔다고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박채서가 한국에 있을 때 비밀 공작 문건이 공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 남한에 있던 박채서는 문건 공개로 인해 이중간첩 혐의를 받았고 남한에서도 힘들었고, 북한에도 다시 돌아가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이후 누명은 벗겨졌습니다.
3. 공작에 당한 리철(극중 이성민)이 북한에서 여전히 살아남은 이유
영화 내용과 똑같이 실제로 리철은 이중간첩혐의로 북한군에 끌려갑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여전히 활동하는 모습이 영화에 연출되는데요.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리철의 가족관계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출신성분이 중요한데 리철의 아버지는 군부에서 잔뼈가 굵은 고위직이었고, 장인어른은 중앙검찰소장이었습니다. 이런 백이 있었기에 큰 징계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4. 2010년 국가보안법으로 박채서가 구금된 이유(뒷쪽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영화 마지막 나오는 문구를 보면 2010년 흑금성이 구금되었다가 2016년 만기퇴소했다고 나옵니다. 박채서는 지속적으로 대북활동을 해왔습니다. 이 중 문제가 됐던 위반사항은 노무현 정권(2003년~2008년) 때 한미연합군 전시작전 계획인 '작전계획 5027'의 대강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줬던 일입니다. 어쨋든 이로 인해 이명박 정권 때인 2010년에 이중간첩이라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 6년을 선고받습니다. (뒷쪽에서 자세히 다룸)
영화 공작 실화
2. 흑금성 박채서 공작의 시작(1993년~1996년)
영화 공작은 실제 인물 박채서가 안기부에서 대북공작을 시작한 시점부터 김대중 대통령 선거에 있을뻔한 북풍을 막는 시점인 1993년~1998년까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리고 마지막 2005년 애니콜CF 광고가 결말부를 장식합니다.
박채서는 1954년 충북에서 출생해 육군 3사관학교를 거쳐 1977년(23세)에 소위를 임관하여 1991년(37)세부터 정보사 공작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공작관은 북한에 공작원을 침투시켜 운용하는 직책입니다)
당시 북한은 1993년~1996년 무렵에 1차 핵 위기로 인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북한에서는 일을 맡길 때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이 알아서 벌어와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외화를 벌어온 이가 애국하는 이었고 북한의 영웅이었습니다.
안기부의 흑금성 박채서가 공작원 시절 평양에서 찍은 사진
이런 배경을 파악한 박채서는 자금난이라는 북한의 약점을 파고드는 공작안을 기획하여 상부의 승인을 받습니다. 그리고 1993년 3월 군복을 벗습니다. 이때부터 엘리트였던 박채서는 무능하고 불평불만이 많은 신용불량자로 1년을 지냅니다. 이렇게 신분세탁을 한 뒤 1994년 공작의 일환으로 북측에 접촉을 시도하고 외화벌이 일꾼인 '리철(극중 이성민)'과 접촉합니다. 그리고 남과 베이징을 오가며 자료를 주고 받았고 다양한 위장테스트를 안기부 승인 하에 통과하며 북한 내 인맥을 넓혔습니다.
1995년 7월 북의 활동기반이 마련돼자 박채서는 정식으로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채용돼어 활동하게 됩니다. 이 즈음 박채서가 펼친 작전이 '편승공작'이었습니다. 박채서 공작팀이 단독으로 대북침투 사업을 벌이는게 아니라 대북사업에 열의가 있는 사업가를 지원하고 거기 편승해 대북침투를 실현하는 공작입니다.
1996년 북에 신분을 위장하고 들어가 찍은 사진 (미국 올림픽) (좌 박채서)
1995년 박채서팀은 대북사업에 열의가 있는 사업가로 광고 프로듀서인 '박기영'에게 주목합니다. 영화 내에서는 박성웅이 박기영을 연기했죠. 영화처럼 박채서는 이웃집으로 이사가 친분을 쌓고 박기영의 광고 사업을 대북침투 루트로 활용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듬 해 'AZA(아자)'란 회사를 설립합니다. 박채서는 '아자'를 앞세워 리철을 통해 광고 촬영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1997년 흑금성 박채서씨와 리철의 만남 - 맨 가운데가 리철(이성민), 맨왼쪽 박기영 대표(박성웅), 맨 왼쪽에서 두번째가 박채서(황정민)
1996년에는 북한의 자금난이 더욱 극에 달했고, 박채서는 광고촬영 사업이 북한에 이득이 될 거라는 미끼를 앞세워 북한 지도부에 접근합니다. 그 결과 김정일 위원장과 면답하고 독점사업권을 따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1997년에는 핸드폰 애니콜 광고 등 급속도로 사업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 전성기를 맞이하며 광고협상을 지속합니다. 하지만 정권교체의 여파로 광고협상을 무산되고 맙니다.
영화 공작 실화
3. 박채서*흑금성의 조국을 위한 신념
(1997년~1998년)
1996년 대북공작활동을 하던 박채서는 당시 청와대의 밀가루 북송 사건 보도에 결정적 제보를 하며 시사저널 '김기자'와 연을 맺습니다. 그리고 1997년 6월(대선직전)에 김기자에게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김기자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견해를 묻기도 했다합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박채서는 자신의 신념 세 가지를 털어놓았습니다.
첫 번째 신념 : 북한이 대선에 개입해 한국의 대통령 선출을 좌우하는 상황만큼은 절대 막아야 한다.
두 번째 신념 : 1997년 대통령이었던 김영상의 대북 정책 실패가 다음 정권에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남북관계에서만큼은 대통령의 지도력이 정말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세 번째 신념 : 적(북한)이 낙선시키려 하는 국가 지도자라면 역으로 우리한테 가장 필요한 지도자가 아니겠느냐. 그 지도자는 바로 김대중 후보다.
이 후 박채서*흑금성은 이러한 신념의 실천으로 몇 가지 북풍 공작 징후와 북풍주의보를 전했고, 이에 김대중측의 국민회의는 서둘러 북풍 대책팀을 구성하게됩니다. 하지만 박채서가 아무리 보안에 유지를 했을지라도 결국 안기부 상부의 눈을 피하기는 힘들었습니다. 결국 박채서는 국민회의를 왜 만나는지 적당히 보고하기 위해 허위 정보 보고를 당시 상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허위보고는 추후 안기부가 흑금성을 꼬리짜르는데 사용됨)
영화의 배경인 켐핀스키 호텔의 리철 참사(황정민역)
이어서 북풍을 효과적으로 막아내면서 김대중이 1997년 당선됩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기존에 북풍작업을 지시했던 안기부는 위험을 느꼈습니다. 1998년 3월 안기부는 꼬리짜르기 식으로 흑금성의 비밀 공작 문건을 <한겨레>에 제보합니다. 거기다가 상당 부분 선거 뒤에 짜집기되어있는 내용이었기에 <한겨레>의 단독 보도에 박채서는 이중간첩이었다는 오명을 쓰게됩니다. 당시 다른 언론은 독자적인 판단이 불가했기에 모든 언론이 박채서를 이중간첩으로 보도했고 그의 가족과 함께 온 몸으로 모멸감을 버텨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박채서씨가 억울했던 것은 자신이 북풍관련 제보를 통해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것을 김대중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와 안기부 세력에 휘둘리는 김대중측에 큰 실망을 느꼈다고 하네요. 이것이 그가 1998년 마지막에 받았던 대우였습니다. 하지만 1998년 시사저널 기사가 공개되어 김대중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었음이 밝혀졌고 이중간첩 혐의를 벗게 됩니다.
이후 박채서는 대북활동을 지속합니다.
영화 공작 실화 내용
4. 1998년 광고의 무산 그리고
2005년 애니콜 광고제안하다.
1998년 안기부의 꼬리짜르기로 흑금성 박채서의 정체가 드러남에 따라 관련된 광고촬영 사업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누명을 벗고 박채서는 북한 인맥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대북활동을 했고 결국 2005년 애니콜 광고를 북에 제안해 성공적으로 유치합니다.
극중박성웅역의 실제인물 광고 프로듀서 '박기명' 애니콜광고를 기획했다
애니콜 CF촬영당시 (좌) 박채서 (우) 조명애
애니콜 북측 CF모델 '조명애'
이 당시에도 여전히 공작당시 광고사업을 위해 설립했던 'AZA' 광고회사 프로듀서 박기명(극중 박성웅)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2005년 광고장면입니다. 영화 결말 장면과 정말 똑같습니다. 이효리가 외모가 변한게 없길래 영화장면 재탕하는 영상인줄 착각할뻔했네요. ㄷㄷ
영화 공작 실화 내용
5. 박채서가 2010년 이명박 정권 때 구금된 이유
2010년 박채서가 구금된 일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행적만 보면 공작으로 인해 분명 한국에 도움이 될 일을 할 분인데, 감방신세라니 뭔가 이상하죠?
죄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노무현 정권 당시 한미연합군 전시작전 계획인 '작전계획 5027'을 북한 공작원에게 넘겨줬다는 것인데요. 유심히 볼점은 2010년 정권교체가 된 후 이명박 정권일때 실형이 선고됬다는 점입니다.
2016년 출소하는 박채서
다분히 정권교체의 여파가 있음을 짐작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박채서는 노무현 정권때 공작활동으로 인해 남한 고급 정보를 북에 넘겨줬고, 그에 상당하는 국익을 취하지 않았을까요? 이 부분은 2016년 박채서가 출소 후 발언한 내용을 보면 예측할 수 있습니다.
2010년 7월 2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흑금성 박채서
박채서는 "세계 어디에도 비밀공작원을 공개하고 (간첩 누명을 씌워) 가두는 곳은 없고 국익을 위해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거듭 "국가가 비밀공작원을 보호하거나 구출하지 않으면 누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겠느냐"로 자신의 행위가 간첩 행위가 아닌 국익을 위핸 행위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실형선고당시 공권력이 의도를 갖고 조직적으로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사실이 밝혀지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공작 실화
6. 정리 및 첨부자료
이상 실화 내용 총정리 완료.
이 많은 걸 누가 읽어주려나 궁금하네요.
저는 나름 정리(4시간 소모...)하는데 재밌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진짜 영화와 별 다를 바 없는 휴먼스토리에
저 분 영화같은 삶을 살았구나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완전 삶이 영화네요ㅋㅋㅋ
참고자료링크
1. 애니콜 광고기획 박기영(극 중 박성웅) 인터뷰 기사 - 2005년
2. 이효리-조명애 CF, 정상회담도 간첩 리호남의 수작? - 2010년
(↑실형선고 당시 흑금성이 간첩인가 파헤친 기사. 박채서 옹호해줌)
3. 북한 공작원 리호남 15년 스파이 행각 - 2010년
(↑실형선고 당시 박채서를 간첩으로 지칭한 기사)
4. 흑금성과 신뢰 관계 16개월의 취재 일기 - 1998년
(↑1998년 당시 흑금성의 누명을 벗게 해준 기사)
5. 북으로 간 안기부 비밀공작원 '흑금성', 그는 왜 버림받았나 - 2018년 8월
(↑영화와 역사를 비교한 최신기사)
6. 6년만에 만기출소 '흑금성', "이제 내 입은 자유다" - 2016년
(↑박채서 출소기사)
그럼이만!